조직에서 이름이 남지 않는다는 것 본문
비승진성 업무는 누구에게, 어떤 규칙으로 배분되는가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
어느 조직에나 이런 일이 있습니다.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해봐야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일. 회의록 정리나 행사 준비, 각종 보고서 취합, 자료 정리, 조직이 굴러가려면 필요하지만 성과 평가표에는 한 줄도 안 잡히는 그런 일들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도대체 그 일은 어떤 기준으로 누구에게 가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이 질문을 우연이나 상황의 문제로 여깁니다. "그때 마침 내가 그 자리에 있어서", "다들 바빠서", "내가 그 업무를 조금이라도 더 아니까"라는 상황에서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조직행동 연구가 축적해 온 결과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이 배분에는 규칙이 있고, 그 규칙은 조직의 생산성이 아니라 요청의 성공 확률을 기준으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비승진성 업무란 무엇인가
경제학자 린다 밥콕(Linda Babcock)과 리제 베스털룬드(Lise Vesterlund) 연구팀은 2017년 『American Eonomic Review』에 이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논문을 실었습니다. 이들이 정의한 비승진성 업무(non-promotable task)는 다음의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일입니다.
1. 조직에는 이익이 된다
2. 그러나 수행자의 평가와 승진에는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논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모두가 다른 사람이 해주기를 바라는 일'입니다. 거기서 보고서 작성, 위원회 참여 같은 것들이 대표적 사례로 언급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연구진이 이 업무를 '하찮은 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논문은 비승진성 업무가 조직에 중요한 일임을 명시합니다. 다만 문제는, 중요도가 아니라 보상 체계와의 연결이 끊겨 있다는 구조에 있습니다.
배정 기준은 적합성이 아닌, '수락 확률'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이 업무가 어떻게 배분되는지 관찰했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특정 집단이 더 자주 지원한다
· 더 자주 요청받는다
· 요청받았을 때 더 자주 수락한다
그리고 이 차이를 만드는 주된 동인으로 지목된 것이 '이 사람은 아마 승낙할 것'이라는 요청자의 믿음이었습니다. 이 대목이 매우 결정적입니다. 배정의 기준이 업무 적합성도, 직무 범위도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기준은 단 하나, '거절당하지 않을 확률'인 것입니다. 요청자는 가장 잘할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장 거절하지 않을(또는 못할)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같은 연구팀은 후속 연구에서 거절에 따르는 불이익(backlash) 문제도 함께 검토했습니다. 이 연구는 앞선 발견을 재현했으나, 거절에 대한 페널티가 배분 격차를 더 키운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부수적 발견이 하나 있었습니다. 거절한 상대에게 부과하는 패널티의 크기가 요청자에 따라 달랐다는 점입니다(원 연구에서는 남성 요청자가 부과한 페널티가 여성 요청자의 경우보다 컸습니다). 요컨대 "거절해도 괜찮다"라는 말은 조직 안에서 모두에게 균일하게 적용되는 조건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 논문은 성별에따른 차이를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을 정확히 밝혀둡니다. 다만, 논문이 규명한 배정 메커니즘 자체ㅡ 수락 확률에 대한 믿음이 요청 방향을 결정한다 ㅡ 는 성별에 국한되지 않는 일반적 구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조직에서 거절 비용이 가장 큰 위치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이 메커니즘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능함이 부담으로 되돌아오는 경로
여기서 조직 내에서 흔히 관찰되는 역설 하나가 설명됩니다.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에게 일이 더 몰린다.'
이는 도덕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확률 계산의 결과입니다. 요청자 입장에서 볼 때 이상적인 (업무) 수신자는, 두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① 맡기면 처리한다 ② 거절하지 않는다. 한 번 수락한 사람은 두 조건 모두에 대한 근거를 제공한 셈이 되어 버리고, 따라서 다음 요청이 지속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갈 확률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 조직 내부에 비공식적인 '기존 수신자'가 형성됩니다. 공식 직무기술서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작동하는 자리인 것이자 역할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배정된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왜 거기에 있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왜? 배정 규칙이 문서화되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비공식적입니다.
그래서 당사자는 종종 원인을 자기 안에서 찾게 됩니다. "내가 만만해서인가?", "내가 거절을 못 해서인가?", "내가 처음에 너무 잘해줘서 그런가?" 그러나 이 질문들은 문제를 개인의 성격 문제로 축소시키기만 합니다. 배정 규칙을 만든 것은 자신, 즉 개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상의 문제 : 무엇이 되돌아오지 않는가
배분 구조와 별개로, 이 상황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축이 있습니다. 독일의 의료사회학자 요하네스 지그리스트(Johannes Siegrist)가 제시한 노력-보상 불균형 모델(Effort-Reward Imbance, ERI)입니다.
이 모델의 핵심은 직무 스트레스를 단순히 '업무량'으로 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대신 투입한 노력과 되돌아오는 보상 사이의 균형을 봅니다. 그리고 여기서 보상은 하나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세 갈래로 구성됩니다.
· 금전적 보상 : 급여, 수당
· 존중(esteem) : 인정, 존중받는 대우, 기여의 가시화
· 경력 기회 및 지위 안정성 : 승진 가능성, 고용 안정, 성장 경로
ERI 모델이 예측하는 것은 이 세 축이 지속적으로 노력에 미달할 때 소진과 건강 악화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이 모델은 직무 스트레스와 심혈관 질환 등 건강 결과의 연관을 다룬 사회역학 연구 전통에서 발전해 왔으며, 본문에서는 모델의 구조만 참조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실무적으로 중요한 함의가 나옵니다. 급여만으로는 균형이 맞춰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감정론이 아니라 모델의 구조적 귀결입니다. 존중과 경력 기회는 금전으로 대체되는 항목이 아니라 별개의 축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월급은 받고 있잖아"라는 흔한 반문은, 적어도 이 모델의 틀 안에서는 반박으로 성립하지 않는 것입니다(누구에게나 돈이 전부인 건 아닙니다).

두 구조가 겹칠 때 : 불안정한 고용 상태의 경우
지금까지의 두 논의를 겹쳐 보면 특정 조건에서 문제가 어떻게 증폭되는지가 드러납니다. 계약 기간이 정해진 고용 형태에서는 ERI의 세 번째 축, 즉 경력 기회가 구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는 승진 경로가 없고, 평가가 누적되지 않으며, 계약 종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즉 이 위치에서 수행되는 모든 업무는 정의상 비승진성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위치는 거절 비용이 가장 높은 자리이기도 합니다. 재계약 여부가 관계에 달려 있다고 인식될 때, 거절은 단순한 의사 표현이 아니라 위험 행위가 됩니다. 요청자가 굳이 이를 계산하지 않더라도, 앞서 본 배정 메커니즘은 자동으로 이 방향을 향합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되돌아올 것이 가장 적은 자리에, 되돌아오지 않는 일이 가장 많이 배정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조합이 우연이 아니라 두 개의 독립적 메커니즘이 만나 만들어내는 구조적 귀결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한국의 상황을 보여주는 최근 자료도 있습니다. 2026년 8월 발표된 직장인 1,000명 대상 조사에서 응답자의 80.4%가 기간제와 정규직 근로자 간 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했고, 고용형태별로는 임시직 근로자가 84.6%로 가장 높았습니다. 또한 상시·지속적 업무는 정규 고용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데 71.9%가 동의했습니다.
또, 주목할 점은 이것이 당사자만의 인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응답자 다수가 이 구조를 이미 인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구조가 보이지 않아서 불가피하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데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문제의 처방으로 가장 흔히 제시되는 것은 "거절하는 법을 배워라"입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연구팀도 이후 대중서를 통해 이 방향의 실천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 차원의 거절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거절 비용이 위치에 따라 다릅니다. 거절의 기술을 익힌다 해도, 거절이 위험한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실행 가능성이 낮습니다. 둘째, 개인이 거절하면 요청은 다음 사람에게 이동할 뿐입니다. 배정 규칙 자체는 그대로 남습니다. 개인의 해결책이 조직의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지점입니다. 따라서 조직 차원에서 실효성 있는 개입은 규칙을 문서화하는 방향에 있습니다.
· 직무기술서의 구체화
: 무엇이 직무 범위에 포함되고 무엇이 포함되지 않는지를 명시합니다. 경계가 모호할수록 흘러내림은 심해집니다.
· 비승진성 업무의 가시화
: 누가 얼마나 수행하고 있는지 집계합니다. 측정되지 않는 노동은 배분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 순환 배정 규칙
: 요청자의 재량이 아니라 사전에 정해진 순서에 따라 배정합니다. 요청 방향을 개인의 성향에서 분리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입니다.
· 평가 반영
: 조직에 필요한 업무라면 평가에도 반영되어야 합니다.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평가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입니다.
이 글에서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나입니다. 비승진성 업무가 특정인에게 몰리는 현상은 그 사람의 성격, 태도, 사회성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것은 요청의 성공 확률에 따라 작동하는 배정 메커니즘의 결과입니다.
사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원인을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순간 해결책도 개인에게 떠넘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문제를 처음 만들어낸 것과 정확히 같은 논리입니다. 부담을 감당할 확률이 높은 쪽으로 계속 밀어 넣는 것 말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문제가 조직 자체에 어떤 손실을 만드는지,
특히 업무 인계·인수 과정에서 책임 소재가 소멸하는 메커니즘을 다룹니다.
Peoplequake lab ㅣ Jane
참고문헌
- Babcock, L., Recalde, M. P., Vesterlund, L., & Weingart, L. (2017). Gender Differences in Accepting and Receiving Requests for Tasks with Low Promotability. American Economic Review, 107(3), 714–747. DOI: 10.1257/aer.20141734
- https://www.aeaweb.org/articles?id=10.1257/aer.20141734
- https://www.aeaweb.org/articles/pdf/doi/10.1257/aer.20141734
- Babcock, L., Recalde, M. P., & Vesterlund, L. (2017). Gender Differences in the Allocation of Low-Promotability Tasks: The Role of Backlash. American Economic Review, 107(5), 131–135. DOI: 10.1257/aer.p20171018
- https://www.aeaweb.org/articles?id=10.1257/aer.p20171018
- 직장갑질119, 기간제 노동자 차별 인식 실태조사. 여론조사기관 글로벌리서치 의뢰, 2026년 6월 1~7일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 대상, 2026년 8월 16일 공개.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81639827
- Babcock, L., Peyser, B., Vesterlund, L., & Weingart, L. (2022). The No Club: Putting a Stop to Women's Dead-End Work. Simon & Schuster
추가로 읽을 만한 자료
- AEA 연구 소개 인터뷰 (위 논문의 저자 인터뷰, 일반 독자용): "Women's work?", AEA Research Highlights, 2017년 3월 15일
-https://www.aeaweb.org/research/women-men-promotable-task-differences
- Siegrist, J. (1996). Adverse health effects of high-effort/low-reward conditions. Journal of Occupational Health Psychology, 1(1), 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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